난 밥 먹다가도 화가 난다(이선이)

우리 지역의 국어교사가 쓴 청소년 소설이라는 말을 듣고 책을 들었다. 제목이 참 인상적이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채워지는 순간에도 화가 난다는 것은, 그만큼 가 쉽게, 갑자기, 그리고 다스리기가 쉽지 않다는 걸 한꺼번에 말해 주고 있다. 이야기도 급식실에서 새치기하려다가 교사의 제지에 가 폭발하면서부터 시작되니 제목이 여러 가지 장면을 잘 담고 있다.

 

화를 다스리지 못해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들이 적지 않게 보도된다. 아파트 외벽 작업자의 휴대전화 음악소리가 시끄럽다고, 인터넷 속도가 느리다고, 도로에서 자신의 앞길을 막았다고 벌어지는 해코지를 거의 매일 실시간으로 듣고 있다. 또 직장 상사의 대기업 또는 원청업체의 갑질까지. 그렇게 다스리지 못한 가 분노조절장애가 돼 치료받는 사람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거나 그래서 자가진단테스트 문항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분노조절장애의 원인이 나쁜 성격이나 습관의 문제가 아닌 질환이므로 치료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비난하기보다 이해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 이 소설도 이런 의도에서 쓰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주인공 상윤이의 목소리를 통해 상윤이의 분노가 폭력적인 가정환경과 잘하는 게 없어 또래 사이에서 소외되었던 학교생활로 인한 것임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가정의 문제가 가장 컸기에 부모의 양육 태도가 바뀌고 치료를 병행하면서 상윤이의 분노조절장애도 조금씩 누그러들고 곧 사회 속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게 될 것임을 기대하게 된다.

요즘 아이들의 목소리에, 갈등의 고조와 해소 과정에 대한 궁금함 때문에 몰입하며 재미있게 읽힌다.

 

하지만 상윤이의 목소리에 집중하다 보니, 분노 표출의 대상이 되는 인물들의 생각과 마음에 대해서는 세밀하게 이야기되지 않는 점은 아쉽다.

학교라는 공동체 공간 속에서 경계를 세우려는 교사와 이에 대한 교권 침해 상황에서 교사들의 마음이 학생들에게 어떻게 전달될 수 있을까. 이를 대수롭지 않게 바라보는 아이들을 마음은 어떤 것일까. 그리고 동료교사의 교권 침해에 대해 조금은 너그러운 태도를 보이는 담임교사가 외출증 발급 요구에 대한 거절로 벌어진 교권 침해에 대해서는 강경하게 대응하는 교육적 의도는 무엇일까. 담임교사와 상윤이, 학급 학생들 사이의 친밀한 관계는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교사 독자로서 청소년 문학을 통해 청소년과 소통하고 성찰하며 성장하고자 한 중요한 상황들이 충분하게 와닿지 않아 아쉽다. 적다보니 또 독자의 몫일 수 있겠다 싶다.

 

(35) 마음이 불안할수록 내 목소리는 더 커졌다. 이 사태가 또 아빠에게 알려지게 되면 나는 어떻게 될까? 맞다가 죽게 되는 것은 아닐까? 배고파서 잠 좀 잔 것이 학생부에 갈 일이란 말인가. 진짜 어이없고 기가막힐 노릇이다. 근데 도대체 내 입은 왜 멈춰지지 않는 거지?

집에서 이렇게 배웠습니까? 수업시간에는 잠이나 자고, 선생님한테 무례하고 굴라고 엄마, 아빠가 가르쳤어요?!!!”

(42) “마음속으로 좀 생각을 해라.”

그게 안 되니까 이 모양이지. 그게 됐다면 이 모양으로 살았겠냐? 지금까지?”

하기야. 나도 좀 이해가 되긴 해. 진짜 화가 나면 머릿속이 새하얘지면서 아무 생각도 안 들잖아. 상윤이는 그 순간에 욕이 터져 나가나보지. 나는 눈물이 먼저 나오던데.”

✎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분노하는 상황 속에서는 성찰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숫자라도 세어보면서 참아 보라는 조언을 한다. 상윤이는 친한 친구와 밥 먹으려고 새치기를 했고 이를 선생님이 이를 제지하자 화가 나 교실로 가 버렸다. 그런데 배가 고파 수업시간까지 잠들었다가 마녀라는 별명을 가진 선생님이 책상을 막대기로 두드리며 깨우자 그 소리가 아빠가 자신을 위협하는 소리로 들려 분노가 폭발했다. 마녀 선생님의 패드립은 잘못된 행동이다. 그런데 수업 시간에 자는 중딩을 어떻게 해야할까, 그리고 중딩 중에 자기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생각하지 않고 자기중심적으로만 생각하는 아이는 얼마나 될까.

 

(94) 다들 재미있고 신나게 학교에 다니는 것 같은데 나는 신나게 어울리는 친구도 거의 없었고, 선생님들은 내가 이해도 못 하고 공부도 못한다고 항상 혼내기만 했다. 그래서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였던가, 지루하고 재미없으면 엎드려 자기 시작했다. 잠을 자면 꿈속에서는 그나마 마음이 편했으니까.

✎ 상윤이도 재미있고 신나게 다닐 수 있는 학교, 그게 필요하다.

 

(215) 아빠는 다시 더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걸어 나간다. 아빠가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으면 이렇게 운동을 시작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 보니, 어쩌면 아빠는 나를 위해서 운동을 시작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허리가 아픈 것보다 내가 마음 아프게 한 것이 더 아팠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운동을 시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 무엇이든 해보자. 운동이든, 화 안내기 연습이든, 담배 끊기 연습이든 뭐든 함께 걸어주는 아빠가 옆에 계시니 해볼 만하지 않을까?'

 학교에서 아이의 문제 행동을 '문제'로 받아들이기까지 감정적인 소모가 너무 많다. 불편한 이야기를  계속 해야하는 학교와 담임, 그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학생과 학부모. 그러면서 불신이 커지고 그러다 졸업하는 경우도 많다. 고등학교 가서 잘 생활하면 좋은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안타깝게도 더 많다. 

 

다행히 상윤이 부모의 경우,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 부분은 나를 포함해 우리 아빠들의 어려움이다. 사실 원인 제공자였으므로 문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해결해야하는데, 내가 아이에게 하듯 나 역시 그렇게 커 왔기에 받아들이기도 행동을 수정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전문가의 진단과 설득이 필요하다. 수업 역량으로 선발된 (담임)교사는 생활 교육을 넘는 문제를 교육하는데 한계가 있다. 미국 같은 경우, 교과 담당 교사는 교과 외 내용으로는 상담도 하지 못하게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충분히 이해가 된다.

 

난 밥 먹다가도 화가 난다
국내도서
저자 : 이선이
출판 : 행복한나무 2019.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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