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가 살던 별(김선정)

책의 줄거리가 표지에 거의 다 담겼다. 이야기를 읽고 표지를 다시 보면 작은 별에 섬세하게 내용을 표현했음을 알게 된다.

 

한때 이 별에서 인간과 공존했던 자연(멧돼지 산바)은, 인간의 개발로 점점 쫓겨나다 죽임을 당한다. 이 별에서는 소수의 사람을 제외한 대부분의 자연과 사람이 대상화되고 피폐하게 된다. 

 

(25) ‘피폐’라는 단어를 책에서 본 적이 있었다. 무슨 말인지 몰라 사전을 찾아보니 ‘어떤 대상이 거칠고 못쓰게 됨. 지치고 쇠약해짐.’이라고 쓰여 있었다. 피읖이 두 개나 들어간 두 글자짜리 그 단어가 이상하게 마음에 달라붙어 주호는 소리 내어 서너 번 발음해 보았다.

 

주호는 부모에게 버려진 뒤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외딴 섬에서 외롭게 산다. 유림이는 이유도 모른 채 가혹한 가정 폭력을 당한다. 홍기수는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다 한 번의 저항에 아버지를 죽게 만든다. 화신은 선생님이 추천한 책을 소지했다는 이유로 아버지와 함께 ‘정화학교’라는 곳에 끌려가 갖은 폭력을 당하고 아버지마저 잃는다. 멧돼지 ‘산바’도 개발로 인해 점덤 인간에게 삶터를 빼앗기다 새끼까지 잃는다. 

이들은 모두 생명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하는 ‘원숭이 실험’과 비슷한 상태나 결과를 보여준다.

 

(165) 지쳐 버린 눈이었다. 후회와 미안함이 가득한 눈. 삽이 산바에게 날아드는 순간 유림이 자신의 머리 위로 돌을 높이 치켜들었다. 산바는 유림을 향해 몸으 날렸다. 유리의 손에 있던 돌이 날아갔다. 등줄기에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너 때문이 아니야.”
산바가 주저앉은 유림에게 말했다.
“아니, 다 나 때문이야. 얼른 가. 더는 안 돼.”
“너 때문이 아니라니까.”
(101) 주호가 이유 이야기를 한 후 유림은 계속 생각해다. ‘이유’가 있다. 세상에는 ‘이유’라는 게 있다. 모든 일에 ‘이유’가 있다. 유림은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아빠가 자신을 때리는 이유, 엄마가 자신을 낳고 아빠에게 버린 이유, 자신이 태어난 이유가 진짜 있을까? 유림이 살았던 세상에 이유는 없었고 없는 것이 마땅했다.

 

피폐화되고 황폐화된 삶의 원인은 이들 탓이 아니다. 하지만 ‘피폐’의 뜻처럼 심신이 황폐해져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도 어렵고 깊은 무력감에 빠진다.

이들이 살 희망을 찾은 것은 사랑과 보살핌이다. 관심이다. 화신은 어머니의 사랑과 보살핌으로 살아갈 힘을 얻게 되었다. 주호나 유림이 역시 화신의 사랑과 보살핌으로 치유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랑과 연대 속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자신의 상황에 질문을 던지며 살아갈 힘을 얻게 되었다. 

이 책 “멧돼지가 살던 별”은 권력과 자본, 권위로부터의 폭력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공존'과 '연대'를 떠올리게 한다. 지금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민주주의와 생태주의적인 삶의 일상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청소년 소설이지만 힘을 가지고 있는 어른들부터 읽어 볼 책이다. 비슷한 무게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화신의 아버지와 홍기수는 아이에게 다르게 행동했으니까. 분량은 가볍지만 이야기 내용은 묵직한 소설이다.

 

(166) ‘너처럼 살았다고, 다 너같이 되진 않아.’
홍기수는 류화신의 말이 생각났다. (중략) 아무리 밟아도 그 여자애는 기죽지 않았다. 경멸의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봤다. 서원을 드나들기 시작한 뒤 유림은 어느새 그해의 화신을 닮아 가고 있었다. 그런 딸이 싫고 무서웠다. 이 세상에 유일하게 자신의 손아귀에 있는 단 한 사람이었는데, 무섭고 불안했다.

 

그런데 읽다 궁금한 점도 생겼다.

화신이 아버지와 끌려가는 상황은 5·18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읽힌다. 또 '정화학교'는 '삼청교육대'를 떠올리게 되는데 이 두 사건이 잘 연결되지는 않는다. 

 

멧돼지가 살던 별
국내도서
저자 : 김선정
출판 : 문학동네 2016.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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