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벌레를 위하여(이상권)

 

'구제역', '조류 독감'으로 살처분된 소, 돼지, 닭, 오리가 100만 마리를 넘는다고 한다.

살처분. 국어 사전엔 없는 말이지만, '살'이란 말에 날카로움이 느껴진다. 구덩이를 파 살아 있는 동물을 강제로 매몰하는 처분. 생명체이면서도 상품이기에 내릴 수 있는 처리 방법이다.  
알 수 없는 이유로  갑작스럽게 집단으로 자살하는 동물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인위적이건, 자연적이건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사인' 같아 걱정되고 한편으로는 불안하다.

동물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동물은 사람과 같다.
그것은 동물을 의인화한 것과는 다른 느낌이다. 시튼의 동물 이야기인 <회색 곰 왑의 삶>이라든가, <시베리아호랑이의 마지막 혈투>에 나오는 동물들은 본능적이지만 사고하는 동물과 인간의 두뇌 싸움 같은 게 있고, 이야기 말미에는 잡고 잡히는 관계였으나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동질감이 나타난다. 책이 아닌, 영상이라는 매체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동물농장>은 오히려 그들의 영성을 드러내지 못한다.

<애벌레를 위하여>는 작은 동물, 곤충들의 이야기에서 동물과 식물의 영성을 느끼게 한다.

이야기는 '가중나무고치나방'의 애벌레를 주인공으로, 애벌레의 터전인 산초나무와 그 주변 나무, 동물들의 탄생과 성장, 먹고 먹히는 이야기가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보다도 더 정밀하게 감정이입돼 묘사하고 있다.
암컷 가중나무고치나방이 산초나무에 낳은 열 세마리 애벌레는, 알에서 나오자마자 장애와 우박이나 태풍과 같은 천재지변으로, 포식자나 사람들의 해코지로 죽고, 나방 성충이 되기 바로 직전 고치를 만드는 애벌레는 단 두 마리에 지나지 않는다.
피부는 연약하고 움직임은 느리며,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애벌레들은 매 순간 그렇게 뜻하지 않게 '어이없이' 죽는다. 포식자들의 따돌림을 여러번 피하고서도 한 순간의 방심으로 죽거나, 마지막 고치를 만들기 전 기생벌의 대리모가 돼 결국 죽게되는 장면을 읽다보면, 평온해 보이지만 매 순간이 생과 사의 갈림길인 냉정한 자연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도 결국 한두 마리의 '가중나무고치나방' 애벌레는 어른 '가중나무고치나방'이 될 것이고 애벌레를 또 낳을 것이다.

읽고나면 그래서 '자연'이라는 말로 그러한 모든 것을 나타낼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 속의 동물과 식물의 삶은, 창조주의 계산된 프로그램일 수도 있고, 진화 과정에서 수억 년 내재된 프로그램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마 그 프로그램 안에 우리 인간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쓴 이야기라고 한다.
하지만 중학생이나 아른들이 읽어도 괜찮겠다. 그 나이에 맞는 다양한 생각들을 하게 될 것 같다.

애벌레를 위하여
국내도서
저자 : 이상권
출판 : 창비(창작과비평사) 201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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