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싱 마이 라이프(이옥수)


중학교 2학년 아이들과 공부하면서 '감상하며 읽기'의 시작은 '공감하는 것'부터라 말한 적이 있다. 하연이의 선택과 결정,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이 묵직해지고 눈이 먹먹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무엇에 공감했는지 지점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10대에게도 성적 호기심과 욕구가 있다. 그건 나 역시 경험했던 일이고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생명과 책임 등 그 결과를 감당할 수 없기에 이성적으로 통제하려했던 욕구이다. 하지만 이 책은 10대의 성적 욕구를 인정하고, 그 결과 갖게된 아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로 많은 부분을 풀어나가고 있다.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결과를 가지고 책임을 묻기 마련이다. 하연이는 결과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나.

사랑을 뭐라 정의하는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하연이와 채강이는 몸이 마음을 지배하여 사랑을 나눈다. 채강이의 능동적인 행위에 따른 결과였지만 하연이 역시 수동적이진 않았다.  그래서 채강이에 대한 하연이의 원망도 누그러진다. 채강이는 하연이와 함께 하려 한다.


그러나 뱃속의 아이는 채강이와 하연이의 개인적인 마음과는 별개로, 한 명의 생명체로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즉 아이의 생사 여부를 감히 선택할 수 없게 된다. 신적인 영역이기도 하고 생명체에 대한 본능적인 인식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는 낳을 수밖에 없다. 엄마와 아이는 한몸이면서도 실은 탄생 그 순간부터 독립적일 수밖에 없다.


하연이는 출산을 결심한다. 의리일까, 하연이를 돕기 위해 진아, 채강, 현규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을 돕지만 한계에 이른다. 하연이는 미혼모 시설에서 아이를 낳을 준비를 한다. 그래도 채강이는 아이의 아버지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려 한다. 

하연이가 분만실에서 채강이를 찾는 장면은 우리 산하가 태어날 때 아내와 내 모습이 오버랩된다. 산고에 시달리는 아내를 걱정하지만 아픔을 공감하기에는 차이가 있고, 그러면서 새로운 생활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아이와 첫 대면에서의 신기함과 반가움 같은 것. 아마 하연이와 채강이도 그럴 것이다.


책은 여기서 이야기를 마친다.  결말이 너무 많이 열려 있다. 

다른 문제도 그렇지만 청소년의 성과 임신, 출산은 풀어나가기 어려운 문제이고,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일단 이 책 <키싱 마이 라이프>는 주인공이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자신과 가족과 주변을 이해하고 애정을 갖게 되는 모습을 잘 보여주는 청소년 소설이다.


그리고 우석훈의 <88만원 세대>도 함께 읽어보았으면 한다.

<88만원 세대>의 첫 장은 첫 섹스의 경제학 '동거를 상상하지 못하는 한국의 10대'인데, 역사적으로보나 본능적으로보다 10대의 성이 자연스러운 대세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우리나라에서 10대들이 본능과 역사에 따라 독립할 수 없는 이유를 사회경제적으로 밝힌 글이다.

독립할 집을 구할 수 없고, 대학교육비에, 그 돈을 조달할 생산적인 아르바이트가 없다는 건. 그리고 이것이 이들이 어린 나이여서 생기는 문제가 아닌, 20, 30이상의 나이로 갈수록 해결할 수 없는 승자독식의 사회라는 문제들 지적한 글.


(44) 정하연, 핑계 대지 마! 아무리 급조한 인생철학이지만 이렇게 박살을 내도 되는 거니? 임채강 나쁜 자식! 아니 이건 그 애만의 잘못이 아냐. 그 순간, 내 속에 웅크리고 있던 그 무엇이 채강이를 강하게 원했던 거야. 나는 분명 정하연인데 내 속에 또 다른 욕망을 품은 정하연이 들어 있었어. 그런데 만약 임신이라도 되면? 아니다. 딱 한 번이었고, 그것도 순간이었는데 아닐 거야. 정말 아닐.... 거야!


(98) 진아가 어리광을 피우듯 징징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갑자기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채강이에게, 아닌 내 자신에게, 그날 밤 우리 둘의 몸속에서 마구 분출했던 미친 호르몬과 "하고 싶어도 참아라. 정말 하고 싶어도 참아라. 미치도록 하고 싶어도 참으란 말이다. 무조건 참으면 된다."라고 농담처럼 비웃으며 지껄이고 다니던 수학 선생에게, 그리고 고의는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내 불결을 들추어내고 있는 진아에게 어이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그래, 난 불결하다! 나쁜 계집애, 그런데 그게 그렇게 불결한 거야?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셔츠를 훌떡 벗어 버렸다. 뽀얀 뱃살이 숨결에 따라 들쑥날쑥 움직였다. 두 손바닥으로 배를 싹싹 문질렀다. 제발 없어져라, 이것아!


(184) "하연아.... 너, 이제 집에 들어가. 미안해! 처음엔 우리 힘으로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185) 채강이와 진아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이 모두 갔다. 결국 나 혼자다.. 나는 진아가 놓고 간 봉투를 바라보았다. 애들이 힘들게 벌어온 돈이다! 애들이 힘들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만나면 웃고 떠드느라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도 못했다.

키싱 마이 라이프 Kissing my life
국내도서
저자 : 이옥수
출판 : 비룡소 2008.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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