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페르 닐손)

장면1.
2학년 ○반, 김○○와 위△△. 이 아이들은 ○반에서 공식 커플이었고, 다른 아이들의 선망과 배려 속에서 교사들까지도 인정하는 사이가 되었다. 수업시간에는 자리를 바꿔 앉는 것이 다반사였고, 손을 잡거나 껴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쉬는 시간에는 거울 앞에서 껴안으며 입을 맞추기도 했다. 남들 눈을 의식하지 않은 대담한 행동들은 담임교사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결국 풍기문란으로 벌점을 받고 학부모 상담으로까지 이어졌다.


장면2.
그 후 두 아이들은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헤어졌다. 아이들 말처럼 쿨하게.


고민은 두 가지다.
아이들의 이성교제는 당연한 거지만 어디까지 지도 또는 교육의 대상인가? 왜 아이들의 사랑은 이렇게 짧고 깊이가 옅다고 느껴질까?
아이들은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언제나 그 선두에 서 있다. 아이들은 앞서가는데 우리 교사들 아니 나는 제자리걸음이거나 계속 뒷걸음질 치고 있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발돋움을 해보려 노력하지만 풍기문란으로 벌점을 준 것도 나 자신의 한계를 아직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아이들 이성교제에 어디까지 관심을 둬야 할까?


두 번째 고민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첫사랑>을 언급해야겠다.
역시 <리버보이>처럼 이 소설 자체에 몰입하기 무척 힘들었다. 주인공이 '사랑의 기쁨' 또는 '사랑의 아픔(고통)'에 대해 이야기할 때 머릿속으로는 이해하면서도 가슴으로는 느끼지 못했다고 할까.


‘내’ 이야기면서 굳이 ‘그’라고 지칭하며 거리를 두는 것(사랑의 고통으로부터 거리를 두고자 하는 노력일 수도 있겠지만), 남자보다 더 적극적(어찌 보면 교활하고)이고 마음 내키는 대로 사람을 바꿀 수 있는 못된(?) 여성 캐릭터의 등장(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여성은 총 5명이다. 사랑의 기쁨이자 고통의 대상인 안-카트린, 그리고 조금은 무기력한 엄마, 투정부리는 동생 한나, 미국에서 만난 수잔, 안-카트린의 친구. 이들은 모두 차이가 있겠지만 부정적으로 묘사돼 있다), 오로지 한 여성과의 사랑에만 초점이 맞추어진 내용 전개(미국생활이나 떠나버린 아버지 이야기를 제외하고 친구나 학교생활, 심지어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의 교차 설정 등 낯설고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어서 읽는 내내 불편했다.


하지만 가슴 한 복판을 가로지르는 질문 때문에 이 소설을 그냥 던지기에는 너무 미안했다. 나는 정말 한 사람을 이렇게 지독하게 사랑한 적이 있었나? 사랑의 아픔으로 괴로워한 적은? ‘그’에 비해 내 젊은 날은 얼마나 초라한가!

사실 아이들에게 특히 중학생들에게 공식적으로 이 책을 권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조금은 노골적인 스웨덴 청소년들의 사랑법이 아직은 우리들에게 낯설고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심리에 대한 섬세한 포착을 통해 생애 단 한 번 경험하기 힘든 사랑의 열병을 대리 체험하게 하는 이 책은 놓쳐서는 안 될 그 무언가를 붙들게 한다. 사랑의 기쁨과 고통을 오고가며 겪는 주인공의 행복과 갈등이 인스턴트 사랑에 길들여진 우리 아이들에게 새롭고 신선한 자극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기에 부정적인 판단은 잠시 유보하기로 했다. 유보에 대한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 아이들이 겪는 이성에 대한 문제를 담은 소설들이 무척 드물기 때문이라는 것.


조금 아쉬운 것은 여자는 믿을 수 없는 존재, 사랑에 대한 불신과 혐오 또는 기피를 불러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하는 우려이다. 안-카트린은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그’의 시선을 통해 보여지는 ‘그녀’는 한 마디로 ‘발정난 암코양이’였기에.


다시 그 아이들 이야기로 돌아가서.
풍기문란으로 걸린 그 아이들은 상담 당시 ‘우리는 커서 꼭 결혼할 것이다. 다른 커플과 다르다’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둘은 결국 헤어졌다. 쿨하게. 그렇게 쿨하게 헤어지기까지 그 둘 사이에 우리가 모르는 많은 사랑의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몇 개월 동안 사귄 것도 어딘가? 단 이틀 만에 끝내고 또 다시 다른 아이와 사귀는 아이들도 있는데.
어쨌든 우리 아이들의 사랑이 단 며칠 만에 쿨하게 끝나는 사이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서로를 성숙시키는 만남이 되었으면 한다.


(40) “프랑스어는 죽어가는 언어라던데. 우리 독일어 선생님 말씀으로는.”
“독일어는 야만인이 쓰는 언어라던데. 우리 프랑스어 선생님 말씀으로는.”

→ 이 소설 속에서는 자주 작가 또는 주인공이 주는 암시를 많이 만날 수 있다. 이 대목은 이 소설에서 중요한 구절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무척 흥미로웠다. 죽어가는 프랑스어를 배우는 ‘그’는 오직 한 사람만을 바라보는 구제불능 낭만주의자이고, 야만적인 독일어를 배우는 ‘사랑의 기쁨’은 언제든 변절이 가능하고 그로 인해 상처를 줄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독일어 문법책을 통해 접근한 그녀는 결국 독일어를 쓰는 스위스 청년에게 돌아서 버렸다. 참.........쯧.


(65) 그가 알기로, 아빠는 패배자였다. 10년 전, 아빠가 위대한 사랑 때문에 엄마와 그를 떠났다는 것을 이제 그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위대한 사랑은 겨우 반년 뒤에 아빠에게 싫증이 나서 벤네스로 떠나 버렸다.

→ 여섯 살 때 떠나버린 아버지에 대한 기억.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자신의 절반은 아빠라고 믿고 있기에 아버지의 그늘을 쉽게 지울 수는 없다. 어머니와 나를 버리고 떠나버린 아버지, 그리고 다시 버림 당한 아버지. ‘버림받음’, ‘배신’에 대해 그토록 고통스러워 하는 이유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아버지의 빈자리로 인해 사랑의 아픔을 쉽게 이겨내지 못했다는 것도.


첫사랑
국내도서
저자 : 페르 닐손(Per Nilsson) / 정지현역
출판 : 낭기열라 2007.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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