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 유명한 세르쥬 페레의 작품이다. 에서 보여주었던 음울하고 어두운 분위기보다는 좀 더 밝아진 느낌이지만 냉소적이고 끝이 보이지 않는 답답함은 여전하다. 이 책은 여름캠프에서 만난 여자아이와 남자아이의 이야기다. 얼핏 보면 꽤나 흥미진진하게 이야기가 흘러갈듯 하지만 제목처럼 ‘하염없이 내리는 비’에 가로 막힌 듯 두 사람 사이엔 어떠한 소통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두 아이들은 프랑스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아이들이라 한다. 남자 아이는 형편이 그리 좋지 않아 자식을 캠프에 보내는 것이 조금은 홀가분한 집안의 아이이고, 여자 아이는 성장했어도 부모의 손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조금은 유약한 아이이다. 성별도 환경도 다른 이 두 아이는 모두 캠프에 가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남자아이는 ..
우리에게 어려움은 반드시 찾아온다. 다만 그 ‘어려움’은 단수이거나 복수일 수도 있고, 사람이나 사물이 될 수 있으며, 경중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가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그 어려움을 극복했기 때문이다. 어려움을 어겨낸 자신감, 그것이 동일한 경험이 아니더라도 우리를 지탱하는 큰 힘이 되어주리라 확신한다. 주인공 로버트는 소심하고 나약한 성격 때문에 동급생인 ‘니커’에게 심각한 괴롭힘을 당할 뿐만 아니라 친구, 교사들로부터 무시당하기 일쑤다. 그래서 별명도 ‘로버트 노 브레인’이라고 불린다. 그런 로버트가 특별활동 프로그램인 ‘노인 프로젝트(노인과 아이들이 경험을 나누는)’에 참여해 ‘미친’ 할머니 에디트 소렐과 한 짝이 되어 활동하면서 큰 변화가 생긴다. 소렐 부인은 심약해 보이는 로..
이 책의 '화두'는 "중학생"이다. 특히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를 갓 졸업해 중학교에 첫발을 디디는 햇병아리 중학교 1학년도 아니고,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진로 선택을 결정해야 하는 중학교 3학년도 아닌, 관심의 사각지대 놓여있으면서도 뭔가 위태위태하고 골치 아픈 그런 아이들……. '충동', '에너지', '뭔가 터져나올 것 같은 폭발 직전의 불안함' 이 불안한 경계에서 길 위의 악마가 돼 버린 다카얀이, 쿨한 척 노력하는 우등생 다모츠가, 착하지만 감정절제가 힘든 츠카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확실히 표현하지 못하는 에이지가 존재한다. 짧지만 그 빛나던 시절을 살았던 아이들에게 우리 ‘교사들’은 어떻게 기억될까?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고 겉도는 도야 선생님이나 요시다 선생님에 가깝지..
표지가 인상적이다. 답답할 정도로 무거운 초록색(진한 녹색 정도?)에 들러 싸여,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작은 가방을 맨 까만 점처럼 보이는 작은 소년 하나가 먼지를 풀풀 내며 달려오는 낡은 버스를 기다리는 장면! '쿨보이'는 바로 보일듯 말듯한 그 까만 점같은 소년의 이야기다. 이야기 줄거리는 이렇다. 도쿄에서 열심히 고등학교 진학 준비를 하던 호시노는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결정으로 아버지의 고향(깡촌이라고 표현됨) 시골로 내려오게 된다. 호시노를 기다리는 건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호시노와 아버지를 구분하지 못함), 어느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만나게 되는 논과 밭, 그리고 숲, 가장 최악인 건 제 멋대로인 동급생들(바보, 게이, 실어증에 걸린 아이). 사립고에 진학하여 명문대를 나와, 부자가 되겠다는 야무진..
"우리는 모두 우주의 고아이기 때문에, 따로따로 태어나서 따로따로 죽어 가는 우주의 고아이기 때문에, 자신의 힘으로 반짝반짝 빛나지 않으면 우주의 어둠 속으로 삼켜져 사라져 버린대... 하지만 말야. 하지만 혼자서 헤쳐 나가야 하기 때문에, 가끔은 손을 잡을 수 있는 친구들을 더 열심히 찾으라고 하셨어." 학교에서 따돌림당하고 자살 미수로 오해받고 있는 키오스크의 나직한 읊조림이다. 제목이 왜 ‘우주의 고아’인지를 알게 해 주는 대목이다. 이 책에는 네 친구들이 등장한다. 부모님이 맞벌이여서 언제나 외로운 남매 요코와 린, 그리고 친구가 된 소극적인 아야코와 왕따 키오스크. 이 네 친구들을 통해, 친구들과 의사소통하는 법, 그리고 공부 외에 소중한 것이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 이 네 친구들이 갈등을 겪..
"넌 태어나지 말아야 했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죽음의 기운이 우리 사회에 가득하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고 죽는 세세한 이유야 다르지만 결국, 돈, 명예가 때문 아닌가. ‘돈(자)’을 ‘본’으로 하는 사회이니 체제 이전에 이미 예견된 일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지금과 같은 신자유주의는 ‘자’의 본’이 절대적으로 개인의 능력에 있다고 주장하니, 돈과 명예 때문에 죽는 것은 오히려 ‘사회 정의’를 실현한 것이라고 해야 할까. 현대 사회의 생명은 ‘속도’다. 속도 그 ‘자체’가 중요하다. 모두 앞만 보고 달려야 사회가 유지된다. 조금이라도 느리면 매트릭스는 파괴되고, 기득권자들은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에 대해 ‘사랑과 관심’을 기대하고 고민하는 것은 그래서 죽어야 할 이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