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니진 길들이기(김정미 외, 푸른책들)


‘파쿠르 소년 홍길동’, ‘스키니진 길들이기’까지 읽으며 이야기가 다소 단순해 문제 상황을 충분히 그려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게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출 수는 있지 않을까, 그렇게 보면 작품집에 모인 네 편들은 나름대로 문제작이다.

<파쿠르 소년 홍길동>
청소년 소설에서 '파쿠르'란 소재가 신선하긴 하지만 내러티브는 클리세다. 결말이 너무 허전하다. 다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SNS를 통해 성장 욕구를 상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분량이고 조금이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걸 찾아보도록 안내하는 읽기 자료로 도입할 수 있겠다.
(15)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2번 영기처럼 키가 작아도 공부를 잘하거나 40번 영우처럼 문제아라면 적어도 이름 정도는 알고 있지 않을까?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나는 사실 내가 생각해도 존재감이 없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잘 노는 것도 아니고, 마치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떠도는 유령처럼.
 학교는 기준이 단순해, 대부분의 평범한 아이들이 ‘어정쩡한 아이’에 해당된다. 그들의 소속감이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떠도는 유령만큼이나 허무한가. 매슬로우는 욕구이론에서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다음으로 소속감을 들었다. 학교에서는 어떻게 아이들의 소속감을 키워줄 수 있을까.

(24) 다른 사람과의 경쟁이 없는 파쿠르. 경쟁이 없다는 것은 정형화된 규칙이 없다는 것이고 이는 자유를 의미하기도 했다. 어느 곳에 있든지 내 몸 하나만 있으면 무한한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파쿠르를 알게 되면서 나도 무언가 한 분야에서 열심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늘 지루하고 존재감 없이 떠돌던 나에게 파쿠르는 어느새 목표가 되었고, 그동안 저 밑에서 잔뜩 웅크리고 있던 자신감이라는 녀석이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많이 위험한 게 걱정이다.

(26) 24시간 마트에서 힘들게 2교대를 해 가면서 돈을 버는 이유가 나 때문이라고 했다. 왜 나 때문이지? 내가 엄마한테 그 일을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엄마는 툭하면 그 소리다.
 10년 전부터 학부모와 아이들에게 했던 말이다. 좀 솔직해질 필요가 있겠다. 육아의 방법 없음을 너를 위한 것이라고 환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찬가지로 다른 교육 방법이 없음을 너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환원하지 말자.

<스키니진 길들이기>
스키니진을 길들이는 행위는 상황 맥락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다. 이야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이 수단이 된다는 것인데, 결국은 타자성 때문이다. 내 안에 기준을 만들어 두어도 살아가기 힘든데 속을 알 수 없는 남을 기준으로 살아가는 것은 엄청난 희생을 노정할 수밖에 없다. 결국 자기 위주의 생각도, 다른 사람 기준의 생각도 문제다. 성장은 좀 거칠게 말하면 지키려는 나와 거세하려는 나 사이의 화학적 결합인 것 같다. 자아와 타자의 변증법적 자아 형성과정?

(49) '사기 전에 사이즈를 먼저 물어봐야 하는 게 매너 아닌가? 그렇다고 내가 순순히 말해 주지도 않았겠지만. 그러고 보면 윤호는 참 눈치가 없어. 내가 다이어트 하는 걸 알면서도 초콜릿을 선물하지 않나!' 갑자기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민정이 말대로 윤호가 조금씩 날 길들이는 것만 같았다. 아니, 어쩌면 스키니진이 날 길들이는 건지도 모른다. 
 다 알면서!

<어느 별 태양>
짧은 구절에 삶에 대한 작가의 인식이 잘 나타난다. 나를 찾는 것. 사실 찾을 내가 있다는 건, 정해진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고, 이 정해진 무언가는 내 스스로의 생각이 아닌 사회구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평행이론의 언급처럼 다양한 가능성이 있는 나를 인정하고 즐기면서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이런 말을 아이들에게 쉽게 할 수 있을까.

(59). "볼품없이 그릇을 반으로 갈라놓은 그거 말하는 거죠? 양도 시원치 않고 어째 맛도 반밖에 안 나는 걸 나보고 먹으라는 거예요? 요새는 무슨 냉면집에서도 비냉에 물냉을 둘로 나눠 반푼이 그릇에 주질 않나 피자집에서도 반반 섞은 뭔 피자를 내놓지 않나. 사람들이 왜그런지 모르겠다니까요. 이제는 선택과 갈등도 머리 아프다는 거 아니겠어요? 뭐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삶의 이치마저 저버리고 사는 게지."
 때로는 절충안이 합리적이라고들 한다. 선택의 순간엔 절충이 합리적일 수도 있겠다. 논쟁의 순간엔 그렇지 않다.

(75) 나의 선택? 내가 선택한 게 맞나? 선택이라는 말에 나는 가슴이 뜨끔거리다가 무거운 돌덩이가 짓누르는 듯 답답함이 느껴졌다. 아무 생각 없었잖아. 그냥 사이클부 보는 게 괴로워서 전학 간 거였잖아. 공부도 자신 없어서 공고로 간 거였잖아. 그저 모두 피하고 싶었을 뿐이잖아. 내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선택했는지 엄마 아빠는 묻지 않았으니까. 그냥 한숨만 쉬었을 뿐. 나는 엄마 아빠의 승낙에 그 이상의 의미를 두고 있었다. 내 인생에 대한 책임까지.
 뜨끔했다. 아마 뜨끔해할 아이들도 적지 않겠다. 분명한 건, 아이가 죽을 때까지 책임질 수 없다면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도록 상황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물론 비난을 참기가 쉽지 않겠다.

(84) "넌 어떻게 살고 싶어?"
"네? 자, 잘 모르겠어요."
"네 말이 정답 아닐까. 잘 모르겠다가 맞지 뭐. 일단 지금 너는 더 즐거워져도 되니까. 진정한 나를 찾고 꿈을 꼭 찾아야 한다, 이런 거야 말로 뜬구름 잡는 소리 아니냐? 굳이 해야 한다면 진짜 즐거워진 다음에 해도 늦지 않는 일이지 않아."
아저씨가 가방에서 캔 콜라를 꺼냈다.
"난 술보다 콜라가 더 좋더라. 내가 술보다 콜라를 더 좋아하는 것처럼 내가 이 세상에서는 태양이 아니더라도 또 다른 행성에서는 태양일 줄 알겠냐."
 김상운의 “와칭”

<링반데룽>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다희가 자살했을 거라는 걸 이야기를 읽으면서 감잡았는데 100년이나 지난 뒤라는 건 의외였다. '링반데룽' 살다보면 무기력의 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삶의 링반데룽에 빠졌을 때 필요한 건, 닥친 현실만 볼 것이 아니라 주변도 살피면서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기준으로만 상황을 판단하는 것도 위험하다. 나도 남도 기다림에 익숙하지 않으니, 심경의 변화가 있으면 말해야 한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다희를 100년 뒤에 깨어나도록 한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의 벽을 허무는데 100년이란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107) "네가 왜 자꾸 그 계단 앞으로 돌아가는지 모르겠니? 넌 길을 잃고 헤매다가 그곳으로 간 게 아니야. 네 스스로 널 그 앞에 끌어다 놓은 거야. 이 상황을 리셋하는 건 너야. 그러니까 이걸 종료하는 것도 네 몫이야. 그 일을 끝내지 않으면 넌 이 상황만 무한 반복하면서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거야. 네가 깨어나야 우리가 만날 수 있어.“
스키니진 길들이기
국내도서
저자 : 김미애,김정미,김지민,최영희
출판 : 푸른책들 2014.04.30
상세보기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