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도록 가렵다(김선영)

 

표지를 보면서 이상의 ‘날개’를 떠올렸다. 그래서 ‘가렵다’를 뭔가 하고 싶은 마음으로, 그래서 근질근질하다는 느낌으로 책을 들었다.

 

이야기는 이름과 전학에 대한 스트레스로 또래 사이에서 자리매김하지 못하는 ‘강도범’과 학생 중심의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기존 교사문화와 충동하는 사서교사 ‘수인’ 샘에게 초점화 돼 있다. 오히려 ‘수인’ 샘에게 더 초점화 돼 있어, 읽으면서 이게 청소년문학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학교에서 교사는 ‘갑’이고 학생은 ‘을’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보다는, 관계 속에서 힘들어하고, 홀로서기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으며, 각자 삶의 문제 속에서 흔들리는 성장의 공간이라는 점에서 서로 위로와 격려를 보내는 도반이 되어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불안감을 작가는 ‘가려움’으로, 특히 손이 잘 닿지 않는 부위의 가려움으로 상징하며, 교사와 학생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조금 색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나 싶다.
다만, 도범이 가정의 든든한 후원 속에서 격랑의 시기를 이겨내는 데 비해, 부모가 모두 가출해 버린 대호가 결국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은 현실적이면서도 안타까웠다.
 
74. 첫날 첫인사를 아이들과 이렇게 말씨름하는 거로 시작하다니. 아이들에게는 첫 만남이 하등의 중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만남과 이별이 잦은 세대 아닌가. 만남이 만남이 아니며 헤어짐이 헤어짐이 아니다. 만남과 헤어짐의 횟수가 잦을수록 일일이 감정을 실어선 살기가 힘들다는 것을 진작에 알아버린 아이들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학습지 구독 끊듯 무슨 무슨 선생 끊어달라고 요구하면 자란 아이들이다. …… 만남과 이별이 밥 먹고 화장실 가는 것처럼 어려울 것도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세대이다. 학교 선생과의 만남이라고 해서 특별하겠는가.
 
 지금 여기 아이들의 ‘사고’는 살아오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엇나가는 일면만 보고 대응하기에는 빙산이 너무 크다. 그런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 고민할 때가 많아 공감이 된다.
 
109. “넌, 저 서고 앞에 손들고 서 있어. 선생님이 지난번에 분명히 경고했지? 그냥 안 넘어간다고.”
가장 싫어하는 교사 유형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갖은 협박으로 아이들의 기부터 누르고 보자는 식. 기분이 한없이 무너졌다. 아이들과 소소하게 부딪힐 때마다 감정이 몹시 상했다. 학교에 있는 한 당연한 일인데 왜 이렇게 힘에 겨운 것일까. 한동안 그 생각으로 골몰했다. 결론은 격이 떨어진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는 것은 이상에 불과했다. 아이들과 자잘한 일로 감정싸움을 할 때마다 자신의 격이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모멸감을 견딜 수 없는 거였다. 그러니까 원인은 아이들이 아니었다. 수인 자신이었다. 자신의 격이 고매하다는 착각. 그것이 문제였다.
 
 어른이고 교사이고 홀로 여러 학생을 상대해야하는 상황에서 존중받고 싶다. 그러나 어른이고 교사이기에 아이들을 이해하려고 해야한다. 183쪽에 나름 해결책이 있다.
 
174. “노력해보자. 선생님도 지금 이 학교에서 아주 중요한 걸 시험하고 있거든. 선생님이 이 학교에서 왕따가 될지도 몰라. 아니 이미 됐는지도 모르지. 선생님도 자신은 없다. 선생님 자신감은 거의 제로에 가까워. 근데 도범이를 보고 힘을 내야겠다. 너도 나도 노력해 보는 거야. 내가 하고자 하는 대로 나를 가게 하기 위해서지. 그럴 땐 용기가 필요한 거야. 남이 하자는 대로 흘러가게 두는 건 나를 덜 사랑하는 거라고 생각해. 도범이 네 결심이 끝까지 갔으면 좋겠다.”
 
183. “중요한 건 자신이 자신을 내치지 않으면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밖에서 아무리 찧고 까불어도 끄떡없어요. 밖이 뭐가 중요해요. 안이 중요한 거지. 스스로가 채워지지 않았는데 밖에서 아무리 채우려고 해보세요, 채워지나. 오히려 불행하고 불안한 자신만 발견할 뿐이죠. 그런 어른들이 희곤이 같은 아이들의 싹을 죽여버리는 거예요. 희곤이는 정말 감수성이 풍부한 아이였는데, 인간의 소리보다는 영적인 텔레파시에 더 예민한 아이였어요. 난 아직도 그 아이 그림을 기억해요.”
 
216. 중닭 세 마리는 땅굴이라도 팔 기세로 몸을 문질렀다. 목덜미로 문지르다 성에 차지 않으면 날갯죽지로 비비다 두 발로 흙은 퍼낸 뒤 다시 문지르기를 반복했다.
“어디에서 어디로 넘어가는 것이 쉬운 법이 아녀. 다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갈 수 있는 겨. 애들도 똑같어. 제일 볼품없는 중닭이 니가 지금 데리고 있는 애들일 겨. 병아리도 아니니께 봐주지도 않지, 그렇다고 폼 나는 장닭도 아니어서 대접도 못 받을 거고. 뭘 해도 어중간혀, 딱 지금 니가 가르치는 학상들 아니것냐?
“가려운 곳을 긁어주지는 못해도 네가 어디가 가렵구나, 그래서 가렵구나 알어주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녀? 너라도 알아봐줘야 하는 거 아녀? 말 드세빠지게 안 듣는 놈일수록 가려운 데가 엄청 많은 겨. 말 안 듣는 놈 있으면 아, 저놈이 어디가 몹시 가려워서 저러는 모양인가 부다 하면 못 봐줄 거도 없는 겨.”
“난 아직 엄마가 있어야 해요. 애들도 가렵지만 나도 아직 가려운 데가 너무 많아요. 그럴 때마다 엄마가 이렇게 지금처럼 속 시원히 긁어줘야 해요.”

 

 주제가 엄마 입을 통해 너무 직설적으로 나왔다. 하지만 ‘가렵다’를 성장과정에서의 불안감으로 잘 빗댔다. 그런 불안감을 이해해 주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고. 게다가 교사 역시 성장과정에 있기에 가려울 것이고. 삶의 변수가 크지 않는 동물에 비해, 인간은 죽을 때까지 성장할 수밖에 없으니까. 

 

미치도록 가렵다
국내도서
저자 : 김선영
출판 : (주)자음과모음 201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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