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준 선물(유모토 가즈미)


뜨거운 여름, 내리쬐는 태양에 무기력해지기 마련이지만, 다양한 활동을 경험할 수 있는 방학이 있기에 소중한 시간이다. 어찌 보면 여름은 장마와 달리 지지부진하거나 우중충하지 않고 화끈한 계절인 것 같다. 뜨거운 여름을 이겨낸 자연만이 가을에 결실을 맺을 수 있으니까. 


하라 할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초등학교 6학년인 ‘류’, ‘하라’, ‘모리’는 죽음이 궁금하다. 죽음은 그 단어를 떠올리는 것 자체로 무섭지만 모르니까 궁금하다. 아이들은 곧 죽을 것 같은 홀로 사는 할아버지를 감시하면서 죽음에 대한 호기심을 풀어나가려 한다. 하지만 곧 죽을 것 같던 할아버지는 자신을 감시하는 아이들을 보며 (오기일지 모르지만) 더 열심히 생활하기 시작한다. 


서로의 존재에 익숙해진 어느 날 아이들과 할아버지는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죽음을 목격하려던 아이들에게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일들이 시작된다. 빨랫줄을 메고, 풀을 뽑고, 수박을 자르고, 할아버지를 위해 마당 가득 꽃을 심고 오래된 집에 페인트칠을 하고 할아버지와 이야기하면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배운다.
축구 합숙을 끝내고 돌아와 보니 할아버지는 평온한 모습으로 이미 숨져 있고, 류는 할아버지의 유골을 보며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시간이 끝났다는 생각에 아쉬움으로 쓸쓸하고 허전해진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자신이 직접 해결해야할 문제임을 알게 된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며 아이들은 자신이 선택한 길을 향해 힘차게 나아간다.

죽음이 무서운 것은 모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성장기 아이들은 조그만 신체의 변화나,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거센 감정의 변화가 무섭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많은 것이 무섭고 그래서 같은 경험을 공유하거나 이해해 줄 수 있는 친구를 찾게 되나 보다. 모든 것을 막연하게 그래서 무기력해 보이는 아이들이게 자기 문제를 적극적으로 부딪치며 최선을 다해보라는 이야기를 할 때 적절한 책이다.

<밑줄 긋기>

(121) 호스의 각도를 조금 바꾸자 물줄기를 따라서 무지개가 나타났다. 빛은 원래 있는 것인데, 그 빛깔이 숨겨져 있었던 것뿐이었다.

아마 이 세계에는 숨겨져 있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많을 터였다. 그리고 그것들은 아주 자그마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위인전에 나오는 과학자나 모험가들이 걸어온 길처럼 멀고 힘든 노정 끝에 겨우 만나게 되기도 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내가 발견하기를 기다리는 무엇인가도 지금 어딘가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142) “난 있잖아, 아직 넙치회를 만들지 못해. 넙치회를 만들어 보기도 전에 죽는 것은 싫어. 넙치회를 만들기 전에 죽으면 어떻게 하지? 그렇게 생각하면 무서워. 하지만 넙치회를 만들 수 있게 되면 언제쯤 죽는 것이 좋을까? 그것도 잘 모르겠어?

나는 언제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뭔가를 할 수 있을까? 설령 해낼 수 없는 것일지라도 그런 생각이 드는 뭔가를 발견하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일가?


여름이 준 선물
국내도서
저자 : 유모토 가즈미 / 이선희역
출판 : 푸른숲주니어 2005.05.06
상세보기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