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살 인생(위기철)
- 상황별 청소년 소설 추천/내면의 문제로 고민할 때
- 2006. 9. 30.
"지나치게 행복했던 사람이 아니라면, 아홉살은 세상을 느낄만한 나이이다"
"아홉은 동양에서는 의미있는 숫자이다. 십진법에서 전체, 완성을 의미하는 열에서 하나 모자라는 수! 그래서 완성을 향하고 있는 수이다."
나는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일종의 질투심과 좌절감을 함께 맛본다. 왜 나에겐 재미있게(자랑스럽게) 이야기할만한 고향도, 사람들도, 사건도, 전설도 없는 것인지. 입담과 말재주가 없는 나에게 평생 이런 유년시절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쓸 일은 없을 듯 싶다.
그럼에도 이 책은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충분한 촉매제가 되고 있다.
작가는 아홉살이란 숫자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위의 두 말은 작가의 그런 의도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아홉'이라는 숫자보다 여민이에게 주어진 '상황, 조건'의 변화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며 책을 읽었다. 이사가 잦고, 얹혀 사는 사람들에게는 '눈치'에 관한 추억 아닌 추억만 있기 때문이다. 여민이가 산꼭대기 집으로의 이사를 '얹혀 산다, 눈치 볼 필요가 없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장면은, 가난이나 상황 등의 조건이 세상을 느끼도록 만드는 반증이 아닌가 싶다.
물론 나에게도 여민이와 같은 아홉살이 있었다. 내 아홉살은 낙향 후 할머니댁에서 얹혀 살던 아버지가 면소재지에 자리를 잡고 독립생활을 시작하셨던 때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의 독립생활은 내 생활에 많은 변화를 주었던 것 같다. 먼저 1년 사이에 '통닭집, 술집, 튀김가게, 연탄보급소, 농사' 등 수많은 업종의 변화가 있어 나를 지칭하는 대명사의 변화가 있었다. 또 전학 온 낯설음에 두문불출했던 생활이 소재지 생활을 하면서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고, 그들과 함께 교회를 다니면서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면 구석의 할머니댁에서 학부모들의 치마바람이 거세게 일었던 소재지의 생활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경쟁사회에 뛰어들었다고나 할까.
생각해 보면 내 아홉살의 기억은 여민이보다는 여민이를 경쟁 상대로 삼았던 반장쪽에 가까웠던 같다. 난 가슴이 작아 학교에 가지 않거나, 숙제를 하지 않으면 무슨 큰일이라도 일어나는 줄 알았고, 친구들과 싸움해서 이길 엄두도 나지 않았으니 항상 참고 착하게 살 수밖에 없었으며 다행이 남들보다 재주가 있었던 공부 쪼가리에나 힘을 쓸 수밖에 없었다. 나에겐 월급기계 같은 담임선생님 보다는 내 상황을 이해해주고 도와 주려했던 나를 정말로 예뻐해 준 선생님들만 만나 여민이와 기종이의 생활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여민이의 '열 살'은 어떠했을까? 숫자에 대한 의미 부여로만 보면 '10'은 완성된 숫자니까 어떤 완성된 삶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내 기준에서 보면 아홉살과 특별하게 달라졌을 것 같지는 않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아홉살'이라는 숫자보다는 상황변화에 의미를 두면 10살이나 11살이나 그렇게 차이가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또 굳이 '10'살에 목멜 필요도 없다. 어차피 이 책의 '아홉살'은 스물 아홉화 되어있는 아홉살이니.
결국 '열 살은 어른의 나이를 상징한다. 아홉살이 어린이의 시각이라면 열살은 어른이 시각이다. 장우림화 되어가고, 숲의 주인이 되어가며, 동네사람들이 되어가는 어른. 그래서 작가는 '고슴도치'라는 책을 '10'년 후에 펴내지 않았나 싶다. 남들이 다가서지 못하도록 잔뜩 가시를 세워놓고 자신만의 성에서 생활하는 소극적인.. 10살.
"아홉은 동양에서는 의미있는 숫자이다. 십진법에서 전체, 완성을 의미하는 열에서 하나 모자라는 수! 그래서 완성을 향하고 있는 수이다."
나는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일종의 질투심과 좌절감을 함께 맛본다. 왜 나에겐 재미있게(자랑스럽게) 이야기할만한 고향도, 사람들도, 사건도, 전설도 없는 것인지. 입담과 말재주가 없는 나에게 평생 이런 유년시절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쓸 일은 없을 듯 싶다.
그럼에도 이 책은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충분한 촉매제가 되고 있다.
작가는 아홉살이란 숫자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위의 두 말은 작가의 그런 의도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아홉'이라는 숫자보다 여민이에게 주어진 '상황, 조건'의 변화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며 책을 읽었다. 이사가 잦고, 얹혀 사는 사람들에게는 '눈치'에 관한 추억 아닌 추억만 있기 때문이다. 여민이가 산꼭대기 집으로의 이사를 '얹혀 산다, 눈치 볼 필요가 없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장면은, 가난이나 상황 등의 조건이 세상을 느끼도록 만드는 반증이 아닌가 싶다.
물론 나에게도 여민이와 같은 아홉살이 있었다. 내 아홉살은 낙향 후 할머니댁에서 얹혀 살던 아버지가 면소재지에 자리를 잡고 독립생활을 시작하셨던 때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의 독립생활은 내 생활에 많은 변화를 주었던 것 같다. 먼저 1년 사이에 '통닭집, 술집, 튀김가게, 연탄보급소, 농사' 등 수많은 업종의 변화가 있어 나를 지칭하는 대명사의 변화가 있었다. 또 전학 온 낯설음에 두문불출했던 생활이 소재지 생활을 하면서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고, 그들과 함께 교회를 다니면서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면 구석의 할머니댁에서 학부모들의 치마바람이 거세게 일었던 소재지의 생활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경쟁사회에 뛰어들었다고나 할까.
생각해 보면 내 아홉살의 기억은 여민이보다는 여민이를 경쟁 상대로 삼았던 반장쪽에 가까웠던 같다. 난 가슴이 작아 학교에 가지 않거나, 숙제를 하지 않으면 무슨 큰일이라도 일어나는 줄 알았고, 친구들과 싸움해서 이길 엄두도 나지 않았으니 항상 참고 착하게 살 수밖에 없었으며 다행이 남들보다 재주가 있었던 공부 쪼가리에나 힘을 쓸 수밖에 없었다. 나에겐 월급기계 같은 담임선생님 보다는 내 상황을 이해해주고 도와 주려했던 나를 정말로 예뻐해 준 선생님들만 만나 여민이와 기종이의 생활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여민이의 '열 살'은 어떠했을까? 숫자에 대한 의미 부여로만 보면 '10'은 완성된 숫자니까 어떤 완성된 삶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내 기준에서 보면 아홉살과 특별하게 달라졌을 것 같지는 않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아홉살'이라는 숫자보다는 상황변화에 의미를 두면 10살이나 11살이나 그렇게 차이가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또 굳이 '10'살에 목멜 필요도 없다. 어차피 이 책의 '아홉살'은 스물 아홉화 되어있는 아홉살이니.
결국 '열 살은 어른의 나이를 상징한다. 아홉살이 어린이의 시각이라면 열살은 어른이 시각이다. 장우림화 되어가고, 숲의 주인이 되어가며, 동네사람들이 되어가는 어른. 그래서 작가는 '고슴도치'라는 책을 '10'년 후에 펴내지 않았나 싶다. 남들이 다가서지 못하도록 잔뜩 가시를 세워놓고 자신만의 성에서 생활하는 소극적인.. 10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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