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를 키우는 여름방학이 되렴!

여름이니까 더운 날씨가 당연하지만, 낮에는 뜨거운 햇빛으로 밤에는 후텁지근한 열기로 사람을 구워삶고 있구나. 날씨에 몸 상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거라. 2주에 한 번은 연락하자는 약속 잊지 않았지? 너희들이 보낸 편지에 답장도 하고 너희들의 답장을 기다리며 내가 보낸 방학 생활을 이야기한단다. 그래야 개학 후 낯설음도 많이 사라지겠지.

 

방학 첫 날은 우리반 남학생들이 봉사활동하는 날이었단다. 매일 보는 얼굴이지만 방학 때 만나니까 반갑고 새롭더라. 14명이 모여 성적표 발송 준비도 하고 학교 창틀과 복도를 구석구석 청소했지. 사람이 온 흔적을 남겨보겠다고 부지런히 덤벼들었지만 학교가 너무 넓었단다. 청소 후에는 얼음과자를 먹으며 1학기에 힘들었던 일, 고쳤으면 하는 일들을 이야기했다. 남학생들하고만 모인 것은 처음이었는데 편하게 많은 이야기를 했단다. 말할 수 있는 상황만 되면 할 말이 참 많은데, 2학기 때에는 상황을 많이 만들어 보자.

 

봉사활동 후에는 함께 독서교육을 연구하는 국어선생님들(이 지면에 교단일기를 쓰는 선생님들)과 광양 어치계곡으로 수련회를 다녀왔단다. 물 속에 발만 담그고 있어도 시원함이 머리끝까지 올라오는 것을 보면 여름엔 계곡이 최고다. 2학기에 어떤 책을 어떤 방법으로 너희들과 읽어볼지 부지런히 이야기했는데 그래서 방학 동안 읽어야할 책이 서른 권 가까이 돼버렸구나.

 

수련회를 다녀와선 서울 큰형님댁에 제사를 지내러 갔지. 아버지와 많이 닮은 큰아버지의 건강도 살피고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사촌들과 오랜만에 이야기도 나누었단다. 돌아가신 분이 살아있는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일 수 있게 해 주는 것 이것이 제사의 새로운 의미이고, 친척들과 내가 운명적인 관계라는 생각도 들더구나.

내려오는 길에 귀여운 내 아들 산하때문에 사회생활을 정리하고 손자를 봐주시는 어머니와 조그만 추억을 만들러 에버랜드에 갔단다. 어머니와 둘이서만 여행을 하는 것도 어머니와 손을 잡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도 어색했지만, 놀이기구를 타거나 이동하면서 어머니와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단다. 사실 얘기만 통해도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정말 많고, 작은 일로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는데, 방학해서 부모님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은 이때,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확인하고 받았으면 좋겠구나.

 

날이 덥고 갓난이가 있어 책을 많이 읽지 못해 걱정이란다.

클로디아의 비밀은 자기가 모범생인 것도, 동생과 싸우는 것도, 딸이라고 차별 받는 것도 지겨워 새로운 세계를 찾기 위해 가출한 클로디아의 모험을 담은 이야기란다. ‘가출보다 모험을 통해 자신을 찾아간다는 꽤 재미있는 책이지. 친어머니의 학대를 용기로 이겨낸 이름을 잃어버린 아이와 속편으로, 여러 수양 가정에서 진정한 친구도 사귀고 그들의 도움으로 자신의 미래를 그리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는 로스트 보이는 가슴이 답답하고 우울한 내용이었지만, 인간의 의지와 용기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었단다.

부시의 낙선을 위해 만들었다는 다큐멘터리 영화 화씨 911, 과도하게 자연을 파괴한 결과 지구온난화로 인해 빙하기에 접어드는 투머로는 섬뜩하기까지 했단다. 평년보다 덥다는 올해,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더위를 이겨내는 연습이 필요한 이유를 느끼게 해 주지.

 

여름방학 5, 무척 짧다고 생각하겠지만 방학이 1년이라고 충분하게 느껴지겠니? 버겁지 않을 정도로 계획 세우고 하나씩 해결해나가다 보면 자신감도 생기고 2학기 생활도 훨씬 재미있을 거라 생각한다. 스스로를 폐인으로 만들지 말고, 열매를 키우는 여름방학이 되렴.

아참, 잘 지내는지 전화로 묻고 싶지만 그렇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아 우리반 누리집에 너희들이 접속하길 기다린다. 자주 들어오고 꼭 건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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