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병영의 2020년 6월

매변 이맘 때, 할머니 할아버지 추도예배로 고향에 다녀온다.

그 덕분에 일년에 한두 번 다녀오는 고향이지만 변화가 크고 빠르지 않아 익숙하고 추억하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20년 새 풍경이 달라진 곳이 있다면 전라병영성이다.

 

2000년 대까지도 이곳은 '병영초등학교'와 '병영면사무소', 민가가 있었다. 내가 중학교 2학년때까지 살던 집도 병영성 복원과 함께 사라졌다.

 

성터에 학교가 있어, 지금 생각해 보면 특이한 장면들이 많았다.

일단 학교 담벼락이 없었다. 아니 성곽이 학교 담벼락이었으며 그래서 매우 높았다. 학교 담벼락은 바깥에서 보면 수직선으로 매우 높았고, 담벼락 안쪽은 스탠드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있었다. 성곽을 따라 아름드리 나무들이 자라 그늘이 제법 많았다. 관방제림 나무 그늘아래에서 섬진강이나 시내를 바라보는 것 같은 풍경!

 

운동장 곳에 오래된 팽나무와 은행나무 아래서놀던 기억이 생생하다. 교장 선생님댁 관사 옆 주먹만한 단감도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이다. 부쪽 담벼락 근처에 녹은 쇳물들이 가끔 발견되기도 하고, 돌이 많아 독사도 꽤 있었던 것 같다. 가끔 교무실 나무 책상 서랍까지 기어올라왔다가 나오지 못했던 독사들이 아침에 출근하신 선생님이 서랍을 열다 깜짝 놀라 질렀던 비명도 기억난다.

 

무엇보다 학교 정문 옆 '하멜이 갇혀 지낸 곳'이란 안내판도 특별한 느낌을 주었다. 당시 "내 고향 병영"이란 향토지가 발간돼 학교에서 읽었던 기억도 난다. 병영성의 경계가 확정된 전설, 배진강 홍교의 전설 등. 

*<하멜표류기> 감상문, <소설 하멜> 감상문

*남도일보 강진 병영성 답사(2017.10.22.)

 

그런데 병영의 가치는 오히려 고향을 떠나 객지에 살면서 알게 되었다.

먼저 한골목. 긴 흙돌담에 쌓인 비스듬한 돌이 네덜란드의 흔적이라는 것, 800년 된 비자나무, 동학혁명 과정에서 파괴된 역사들. 또 연결되는 이야기들.

 

첫째, 병영성을 건축한 마천목 장군은, 곡성기차마을에서 압록으로 가는 길 효심이 가득한 '도깨비살'의 주인공.

둘째, 제주 용머리해안의 하멜상선. 제주에 표류했던 하멜 일행이 7년 정도 유배된 곳이 병영.

 

병영성을 복원하고 나서 몇 해 전까지도 기념 행사(축제)를 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나도 2년 전에는 성벽을 걸었던 기억도 난다.

마침 이번에는 드론을 가져가 병영성 풍경을 담아 공유하고 싶었다.

 

그런데 병영성은 생각보다 컸다.

한 앵글에 담아보려고 드론을 한껏 높이 멀리 날려보았으나, 안전을 위한 설정(높이 120m, 거리 600m)에 도달해 다 담지 못했다.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어, 설정을 변경한 뒤 다시 띄위기도 힘들고.

 

자꾸 찍어보면 더 나아지지 않을까. 2020년 6월 27일 오후 5시 풍경.

 

<서문 방향에서 바라본 전라병영성, 멀리 수인산 노적봉이 보인다>

 

<북문 방향에서 바라본 전라병영성. 멀리 보이는 곳은 작천. 거기 살던 친구들도 보고 싶다.>

 

<동문 오른쪽에 위치한 '하멜전시관'. 코로나로 문을 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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